[그알싫][박정희소백과사전] 2. 친일과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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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에는 박정희의 만주행 및 광복 후 행적을 통해

친일 성향을 알아 보고자 한다.




1. 돈과 정년이 보장된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버리고 군인의 길을 선택하였다.

- 20~23살까지 교사 생활을 한다.

- 만주 군관 학교 입학 조건은 16~19살까지다.

- 2 넘게 혈서를 써서 군인이 되고 싶어한다.

- 군인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칼을 차고 싶었다고 한다.

- 아리카와 대좌가 대구 사범 4기생 교련 수업에서 뛰어난 박정희를 눈여겨 보고 군관 학교에 입학하게 도와준다.

- 대구 사범 학교에서는 거의 꼴찌였으나, 만주 군관 학교에서는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한다. (적성에 맞았다고 본다)



2. 사관 생도로서 고향에 복귀하여 경찰 서장을 불러 과거 서운했던 것을 칼을 차고 꾸짖었다.

- 과거 자신에게 섭섭하게 행동했던 경찰 서장을 불러와 칼을 차고 크게 꾸짖었다.

- Military First. 

- 당시 시대적 배경은 군국주의 상황이었다.

- 군국주의 체제의 일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 어렸을 때부터 기질이 군인이었다.



3. 박정희의 만주 행의 의미

- 일제 시대 선생님이 되었다고 해서 친일 세력이라 비판할 없다.

- 만주에 가서 다른 일을 하였다면 친일 세력이라 비판할 없다.

- 일제 시대 때 만주에 가서 군관학교에 들어갔다.

- 만주에 가서 군관학교에 것이 18 독재의 분기점이다.

. 만주 행의 이유

: 군인(권력) 대한 열망이 있었다.

: 교사에 대해 불만족하였다.

현실에 대한 불만

: 가정사

만주 군관학교 휴가 구미의 집에 가지 않고, 문경에 있는 여관에 묵었다.

: 만주는 당시에 신천지였다.

미개척 지역이었다.



4. 광복 광복군에 개입

- 광복 2 일본의 패배를 듣는다. 당시 박정희는 대위였다.

. 무장 해지 당했다.

. 군관학교 출신 조선인인 이주일, 신현준, 박정희는 광복군의 존재를 듣고 같은 군인이니깐 가입을 시도 한다.

. 상황에 대한 대처가 빠른 인물이다. 


- 김구 선생이 광복군을 10 장병 모집한다.

. 장준하 선생은 박정희의 광복군 개입을 반대했다.

. 박정희의 만주 군관학교 출신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박정희 입장에서는 장준하 선생이 매우 눈에 가시였을 것이다.


-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광복군 출신을 모두 싫어했다.

. 김구 선생 암살 

. 일본군 출신을 중용하였다.

: 일본 육사 출신이 수뇌부를 차지했다.

그래서 박정희가 끝까지 살아남아 육군 소장이 되었다.

친일 군부 출신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 부사관 출신


. 이범석 장군이 유일하게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 군부의 핵심 보직 중에 광복군 출신 유일하였다.

: 이승만 정권 광복군이 부담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광복을 위해서 자기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다. 

본인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친일 경찰들을 대거 등용한다.

: 김원봉 장군 남로당 공산주의로 오해 받았다.

: 자유당


.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반대로 김구가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친일파 정리가 되지 않았다.

일제시대 군수 이상은 친일파다.


. 6.25 전쟁의 발발

: 친일이었으나 무공 전공을 세웠다.

: 커리어 세탁 용도로 사용했다. 

: 친일 간부 이력을 희석하고 한국전쟁 영웅이 되었다.

) 친일파였고, 6.25 공적을 세운 백성엽 장군



5. 독일의 포르쉐 박사 휴고 보스

- 포르쉐 박사 : 자동차 분야에서 막대한 업적을 이루었으나 히틀러 시대 군수 차량을 생산한 죄로 감옥 살이 하였다. 

- 휴고 보스 : 나치 군복을 제작한 것에 대해 사과하였다.





팟캐스트 '그것은 알고 싶다'를 듣고 

개인적으로 기록한 공간으로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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