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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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풍류공대생 입니다~


지난번 포스팅에서는 타이완 초기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지요. 

오늘도 이어서 계속 해보겠습니다 :)

지난 타이완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타이완 이야기 (1)





1. 처음이자 마지막 독립


19세기 아편전쟁으로 천하를 호령하던 청나라가 섬나라 일본에 지게 됩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홍콩이 영국령이 되지요. 여러모로 중국의 수난시대입니다. 


이러던 와중 1871년 일본 오키나와 배가 좌초되어 타이완에 흘러 들어오게 됩니다. 

이런 오키나와 인들을 타이완 부족이 죽여버립니다. 

이에 화가 난 일본이 청나라에 사과를 요구하자 청나라는 타이완이 자기 나라가 아니라고 책임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침략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일본으로서는 이런 청나라의 태도가 무척 고맙습니다. 

결국 1874년 일본이 타이완을 침공합니다. 

청나라는 결국 일본에 돈을 주고 군사를 물리게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오키나와인들은 일본 국민이 아닐 때의 사건이었습니다. 오키나와는 1875년에 식민지화 하게 되는 오키나와인들의 죽음은 그저 명분이에 불과한 것이었지요. 

이렇게 일본 입장에서는 은근슬쩍 오키나와를 일본령으로 인정하는 사건이 되어 버리지요. 






2. 전봉준의 갑오농민운동


타이완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여기서 잠깐 조선 말의 우리나라 이야기를 잠깐 할게요.


전봉준의 갑오농민운동이 발발하고,

정부가 밀리자 무능한 정부는 우리나라 문제에 청군과 일본을 개입 시켜버립니다.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청군과 일본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지요. 

냉큼 조선을 도와주러(차지하러) 옵니다. 


청나라와 일본 둘 중에 아무나 도와줘요~ 하고 요청했는데 두 나라 모두 받아들이자 조선땅에서 두 나라가 마주치게 됩니다. 두둥

그리하여 조선을 차지하기 위한 청일전쟁이 발발하게 되지요.

타이완에 비해 조선은 지리적으로 군사적 중요도가 있으므로 전쟁을 벌이나 일본에 집니다. 

결과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게 되지요.


시모노세키 조약은 다음과 같습니다. 

1 : 청나라는 조선이 자주 독립 국가임을 인정한다.

2 : 청나라는 일본에 요동 반도, 타이완 부속 여러 섬의 성노 병노 제조 등을 일본에 허락한다.


보통 역사 시간에 시모노세키 조약의 1조에 대해서 배웁니다. 

조선이 자주 독립 국가로 인정하는 것을 왜 1조에 넣을까 하고요. 

조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선은 자주 독립 국가이므로 청나라 너네는 앞으로 간섭하지마라~ 라는 뜻이라는 것을 배우지요.


그러나 타이완 입장에서는 2조가 더 중요합니다. 

청일 전쟁의 패배로 청나라 입장에서는 조선 뿐만 아니라 타이완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고 맙니다. 

타이완 섬을 빼앗기는 것이 억울한 청나라는 타이완을 꼬득여서 독립하라고 설득합니다. 


그리하여 타이완 민주국, 대통령제 성립 준비를 진행합니다. 매우 빠른 시간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타이완 총통은 독립에 대한 의지가 없어 타이페이 성문을 일본에 열어주고 점령 당합니다. 

일본이 점령 당하기 전까지의 5개월 동안이 타이완이 유일하게 독립국으로서 지위를 유지했던 시기입니다. 






3. Japanese 타이완


일본은 타이완 지배에 공을 들이기 시작합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첫번째 식민지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일본이 지배했던 나라 중에서 일본에 대해서 가장 후한 평가를 받습니다. 


타이완은 일본의 지배 대해 한국과 달리 저항이 적었습니다. 어떻게 식민지가 지배를 받는 나라에 대해 저항하지 않았을까요?

이는 아마도 독립국이었던 지위를 얻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항 의지도 적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또한 한반도는 중국이라는 도망갈 지역이 있었으나 타이완은 섬나라이므로 그럴 없었던 이유도 한 몫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본의 식민지화 이후에 타이완 국민에게 국적 선택 조항 있었습니다. 

조약 체결한 이후 25개월 내에 일본인이 될지 중국인이 될지 선택할 있었습니다. 

재산이 있는 지배 계층은 모두 중국으로 이동해버리지요.


1919 유관순의 3.1 운동 이후 일본은 식민지에 대해서 억압이 아닌 문화정책 실시하였습니다.

타이완은 일본의 근대화 정책 테스트 케이스였습니다. 

그러고선 일본의 근대화 정책의 테스트 사례 성공한 것들을 일본에 적용하였습니다. 

조선은 병참 기지 사용했으나 ,타이완은 지리적인 위치로 무역항으로 사용한 것이지요.


또한 타이완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구축하였습니다. 

그래서 1930년대에는 타이완이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발전된 나라였지요.

근대화의 성공으로 결과가 좋으니 타이완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좋아집니다. 

후에 타이완은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불릴 정도로 성장하지요. 






4. 2 세계 대전


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고 일본은 전쟁에 참가합니다. 

미국 연합군의 반격으로 오키나와와는 다르게 타이완에서는 미국이 쳐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생각보다 전력이 약해서 타이완을 무시하고 오키나와를 direct 거쳐서 일본 본토를 침공한다는 작전이었지요.

그 덕분에 타이완과 제주도는 전쟁을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5. 일본 극우의 자부심


타이완 식민 정책에 대한 일본 극우 단체의 자부심은 매우 강합니다. 

일본 덕분에 타이완이 저정도로 잘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현재 타이완의 노인들은 일본에 대해 매우 호감을 가지고 있지요. 

일본 극우 세력은 타이완을 대동아공영권 이상향이라 주장합니다. 

전쟁에 승리했다면 모두 타이완처럼 살았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팟캐스트 '그것은 알고 싶다'의 '오늘까지의 타이완'을 듣고 

개인적으로 기록한 공간으로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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