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대통령 조선일보 방우영 (2)

팟캐스트,/이이제이|2017. 11. 18.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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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힘이란 정말 무섭습니다. 

같은 현상을 두고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교묘히 기사의 순서를 바꾸고, 제목을 자극적으로 쓰고.

대중들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지요. 영화 [내부자들]에서 나온 것처럼 말이죠. 

우리나라 언론, 그 중에서도 조선일보 방우영에 대해서 알아보는 밤의 대통령 특집 두 번째 시간입니다. 


첫 번째 포스팅은 아래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밤의 대통령 조선일보 방우영 (1)



지난 포스팅에서는 방우영의 할아버지인 방응모 그리고 그의 가족들을 간단히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오늘날의 조선일보를 만든 방우영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방우영


형 방일영이 이어 또 다른 밤의 대통령 방우영은 방재윤의 아들로서, 방재윤은 당시 아들이 없었던 방응모에 양자로 들어갔으며, 원래는 방응모의 친형 방응곤의 아들이었습니다. 

방우영은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였으며 그로 인해서인지 연세대를 매우 아끼는 성향이 있었습니다. 

졸업 후에 방우영은 조선일보 공무국 견습생으로 입사하여 8년간 사회부 경제부에서 근무하였습니다. 


형 방일영은 방우영으로 하여금 아카데미 극장에 가서 경영을 해보라고 권유 했습니다. 

극장에서 일한 탓에 배우들하고 친분을 쌓을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 신성일, 엄앵란, 트위스트킴의 맨발의 청춘 성공으로 빚을 갚고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36세의 나이로 방일영에 이어 조선일보 사장에 오르게 됩니다. 

당시 조선일보는  4 신문사였고, 제1 금융권, 사채, 세금 체납 등이 많았지요.

그러나 이런 세금을 2 분할 납부하도록 허락받고, 은행 융자는 김종필에게 결재 받아서 지연, 인맥을 총 동원하여 체납을 미뤘습니다. 

또한 젊은 신문으로의 개혁이라는 핑계 아래에 정리 해고 단행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젊은 사람들은 똥차 치우고 사는 방우영 회장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아직도 조선일보에 컬럼을 쓰고 있는 김대중 주필을 조선일보에 입사시킵니다. 

우리가 흔히 아닌 그 김대중 대통령이 아닌 동명이인인 그는 방우영이 좋아할 만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김대중은 방우영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썼지요.





2. 중앙일보 창립


이병철, 홍진기(중앙일보 초대 회장) 도움으로 중앙일보가 창립됩니다. 이병철 삼성 회장의 도움을 받은 홍진기가 중앙일보 사장이 되니 재벌이 언론을 만든 것입니다. 이래서 중앙일보는 삼성에 친화적일 수 밖에 없는 태생적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이에 방우영은 재벌이 신문사를 만드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반발했지만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중앙일보에 의해 조선일보는 5등 신문사로 밀립니다.





3. 조선일보의 언론 왜곡


1973 야당 지도자 김대중 납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선우휘는 조선일보 사설을 바꿔치기 하여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일로 남산에 가서 고문을 받았지요.


방웅영은 기자 윤리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동아일보의 백지광고 사태로 언론인이 탄압을 받았을 때도 그는 언론인으로써의 가치를 인간적 정의와 의리 보다 높은 가치에 두었습니다.

이에 반발하는 조선일보 기자 33명을 해고하기에 이릅니다. 


박정희 정권 당시에 포항에서 기름 원전이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박정희는 석유가 맞는지 확인하라 하여 정재계 인사들을 불러 석유 냄새를 맡게 했지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석유 냄새를 맡지만 눈치가 빠른 방우영은 박정희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알고 석유를 직접 손에 찍어 맛을 봅니다. 

석유가 있기를 내심 바랬던 박정희의 눈에는 그런 방우영의 적극적인 모습이 마음에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조선일보에는 정부의 미허가로 1년간 미뤄졌던 윤전기가 바로 도입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아이스하키 스포츠 협회장 박갑철 계좌 1억원 송금 비리 사건이 터지고 맙니다. 

이에 박갑철은 구속되고 말지요. 

박갑철 계좌는 방우영과 연관이 있으므로 김대중 주필까지 당시 박갑철에 대해 구명 운동을 합니다. 

당연히 조선일보는 축소 보도하는 등 언론사로서의 중립성을 잃은 행동을 보입니다. 


5 청문회에서는 전두환과 결탁해 아부했던 방우영이었습니다. 

심지어 광주 시민을 폭도라 왜곡하고 삼청교육대를 미화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펼쳤던 방우영은 2016 5 8일에 88세의 나이로 별세합니다. 





4. 결론 


정당하지 않은 권력에 머리를 숙이는 사람은 언론인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보수 신문이라고 말하는 조선일보에 대해서 나는 보수 신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보수에 걸맞는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며, 보수와 진보에 대한 내용은 다른 포스팅에서 다시 언급하는 것으로 하고, 

조선일보에게 기자 정신과 사명감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팟캐스트 '이이제이'를 듣고 

개인적으로 기록한 공간으로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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