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로프 팔메 암살 사건의 미스터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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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풍류공대생 입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스웨덴 총리 올로프 팔메의 업적 및 암살에 대해서 이야기 했어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올로프 팔메 암살 사건의 미스터리 (1)


이번 포스팅에서는 스웨덴 총리 올로프 팔메 암살의 용의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987 팔메 죽음을 취재차 리부스 미국 기자가 스웨덴을 찾아옵니다.

팔메의 죽음은 팔메의 외교 활동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라는 익명의 제보를 받습니다. 

팔메가 중립국인 스웨덴의 지위를 이용해서 걸프전쟁에 개입을 했기 때문이죠.

그는 UN에서 미션을 받아 3세력으로 이란과 이라크를 오가며 평화를 중재를 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여기서 걸프전이란, 빌클린턴이 일으킨 걸프전이 아니고 

이란-이라크전이라고 우리가 흔히 부르는 걸프전을 말합니다. 


중립국의 입장에서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이 팔메를 왜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스웨덴의 주요 수출 산업 하나는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SAAB도 스웨덴 기업이며, 

알프레드 노벨이 만든 노벨 인더스트리에는 많은 무기 제조 회사가 속해 있습니다. 


과거 팔메 재임 시절에 스웨덴 방산업체불법 무기 판매에 대한 특별 조사를 지시하기도 했었습니다. 

익명의 제보자는 팔메의 죽음은 무기 제조의 영업 활동에 타격을 그의 결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이란-아라크의 관계 개선을 위한 팔메의 국가적인 활동으로 많은 적을 만든 정치인이기 때문입니다. 

경찰이 자료를 요구하나 외교부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내용이라 자료를 없다고 거부하고 상황입니다.

또한 영화 관람 일정이 당일에 결정됐고, 담당 경호원도 모르고, 가족 내외만 아는 사실인데, 암살범은 어떻게 영화 관람 사실을 알았을까요도청을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스웨덴은 작은 사회입니다. 

팔메의 죽음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밝혔다는 것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치인이 사라져서 득을 세력을 하나하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봤을 때 팔메의 죽음으로 득을 볼 정말 많지만

어느 정도 힘이 있으며, 팔메를 죽을만큼 증오하는 세력들만 추려봤습니다. 





1. 첫번째 용의세력 : 빅토르 군나르숀과 극우세력


암살 당일날 여성이 카페에서 의심스러운 남자를 만났다고 제보하였습니다. 

그는 팔메에 대한 심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으며, 명함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카페에 있는 몇 사람도 그가 암살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무기를 들고 있었다고 제보했습니다.


사건 일주일 , 명함 주인인 빅토르 군나르 숀이라는 사람을 검거했으나 심문 당일에 풀어줬습니다만

3 후에 다시 용의자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직업이 없었고, 여러 극우 단체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유럽 노동자당입니다. 

스웨덴 내부의 유럽 노동자당은 이름과는 달리 극우 정당이다.


그를 포함한 당원들은 린든 라로슈의 열렬한 추종자였습니다. 

린든 라로슈는 1976년부터 2004년까지 끈질기게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에 도전한 파시스트 성향의 인물입니다. 

미국의 극단 주의 증오를 공공연히 표현했습니다. 

이들은 세력은 약한데 자금줄이 튼튼한 것이 미국 중앙정보부 CIA 연관되어 있다는 썰이 있습니다. 


사실 팔메의 가문은 유럽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가문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이 들어보셨을 발린베리 가문이라고 있습니다. 

19세기 은행가 가문으로 150 동안 은행, 항공 등 많은 분야에서 부를 축척한 가문입니다. 

ABB, SAS, 일렉트로눅스을 소유하여 스웨덴 시가 주식 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과거 삼성이 모델로 삼고자 공부를 한 가문이기도 합니다. 


팔메 가문은 이러한 발린베리 가문과 쌍벽을 이루는 가문입니다. 

금융계를 주름잡는 손으로,

외국어를 가르치는 가정부가 있었으며 

당시에 팔메는 미국으로 유학을 갈 정도로 부유했습니다. 

스톡홀롬 외교지구 동네에 팔메의 생가가 있는데 지금은 루마니아 외교관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팔메 생가 지하에 빌트 가문이 살고 있었는데 빌트 가문은 팔메 다음으로 수상이 되는 집안입니다. 


보통 집이 부유한 사람들은 대부분 보수당에 들어가는 팔메는 자진해서 사민당에 지원합니다. 

당시 사민당에는 초등학교 졸업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토론에 매우 능했던 팔메에 대해 극우 정당들은 극도로 미워합니다. 

여러 싸움에서 져봤지만 토론 배틀에서 지는 것이 제일 기분 나쁘죠.

팔메는 위협하는 모욕이 담긴 편지를 200개가 넘게 받았습니다. 

북유럽 국가인 스웨덴에서 이런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도를 넘는 모욕을 당했지요.


용의자 빅토르 군나르숀의 집에서 팔메에 대해 악의적으로 글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은 범인이 입었던 옷과 비슷한 코트를 용의자의 집에서 발견되었으나 이런 옷은 매우 흔한 아이템이라 결정적인 증거가 되지 못했습니다. 

과학수사팀에 따르면 군나르숀의 옷에서 탄약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하지만 이것은 암살 무기와는 다른 탄약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현장에서 범인을 가장 가까이에서  팔메 부인은  코트는 범인의 옷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군나르숀을 범인이라고 지목했던 목격자는 없었습니다. 

검찰의 명으로 경찰이 군나르숀을 풀어주고 전화를 도청하나 다른 특이점을 발견할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은 경찰의 용의선상에는 머물러 있습니다. 


팔메가 사회주의 성향이 짙었기 때문에 극우 정당에서는 팔메가 스웨덴을 소련에 팔아 넘길 것이라고 주장했던 사람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종의 빨갱이 타령인 셈이지요.

소련의 스파이?라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극우파였던 라로슈 역시 팔메를 혐오했고 그래서 팔메를 혐오하는 사람은 극우파였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군나르숀은 검찰에서 풀려난 미국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스웨덴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은 많았기 때문에 미국 이주만으로 의심하기에는 무리가 있긴 합니다.

그는 1993 마흔살의 나이로 죽는데 미국에서 레이몬드 언더우드 라는 전직 경찰관이 총에 맞아 죽습니다. 

공식적인 밝혀진 살해 동기는 언더우드의 약혼녀를 군나르숀이 꼬셔서 언더우드가 총을 쏜 것입니다.

군나르숀과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은 사실 자기가 팔메를 죽였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다고도 합니다.

군나르숀이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날 있었던 것은 미국-군부-우파 같은 세력에 속해 있기 때문에 검찰은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작은 정황들로 국가 전체를 뒤집을 있어서 겁이 났을 수도 있었겠지요.


다만 군나르숀을 심문했던 담당 검찰은 그가 범인임을 확신했다고 합니다.

군나르숀과 CIA 분명 관련이 있고, 암살에 대하여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살인자는 아니고 희생양으로 사람을 쓰려고 했던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죽이지는 않고 자리에 머무르게 해서 수사를 어렵게 만든 아닌가 생각도 됩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엄격하게 지켜지는 스웨덴의 언론은 군나르숀이라는 이름을 제대로 말할 없습니다.

그래서 '32살짜리' 라고 표현하였다고 합니다.

갑자기 용의자가 귀여워졌습니다 ㅋ

귀여운 것은 수사 중에 군나르숀의 생일이 지나게 됐는데, 그러면 32살짜리가 33살이라고 불러야 하나 고민했다고 합니다.






2. 두 번째 용의자 세력 : 쿠르드 노동자당


암살 5개월 , 수사가 진도가 나가자 스웨덴 국민들이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경찰이 새로운 용의자를 확보했다고 언론에 보도했습니다. 

신문사에서는 "그가 죽음을 명령했다. 암살자를 찾았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사용하였지요.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그는 쿠르드 노동자당 입니다. 


스웨덴은 이민에 대해서 자유로운 나라가 아닙니다.

특히 경제적 이민은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난민에 대해서는 매우 너그럽지요.

이는 이민은 받고 난민을 안받는 대부분의 OECD 국가들과는 반대되는 정책입니다.

이번에 시리아 난민들을 독일 다음으로 가장 많이 받은 나라입니다.

독일은 인구 규모가 있으니 이해할 있지만 스웨덴은 국민 1000만명 내외인 점으로 봤을 매우 많이 받은 셈입니다.


쿠르드계 이민자들은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터키, 이란, 이라크에 거주하는 쿠르드계 이민자들이 스웨덴으로 많이 넘어왔지요.

2006 기준으로 스웨덴에 거주하는 쿠르드계 이민자들이 10만명이 달합니다.

이는 스웨덴 인구 1%에 해당하는 상당히 많은 숫자입니다.


이민온 쿠르드계인들이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하여 쿠르드 당을 세웁니다. 

당원들 16 정도가 마르크스 레닌 주의자였는데 정부에서는 16명이 테러리스트라고 지목한 것입니다. 

1983 팔메가 암살 당하기 3 전에 노동자당 지도자가 스웨덴에 입국 비자 심사에서 거절당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에 속했던 회원 2명의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이에 법원은 살인자를 찾아 종신형에 처했으며, 나머지 회원들에게 추방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쿠르드 족들이 불만을 품었을 것이다라고 언론은 주장하였습니다.

도청 결과 '결혼'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는데, 이는 암살을 의미하는 암호인 것으로 추정되며,

범인은 암살 당일 근처에서 배회하다가 사건 도주했다고 정부는 입장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팔메는 사실 어떤 수상보다 난민들에 대해 관대했기 때문에 

설득력이 약하지만 정부는 강력하게 의심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외국 이주민들을 악으로 지명하는 것은 일을 쉽게 만듭니다. 

그것과 연장선상에 있는 아닌가 싶습니다.







3. 세번째 용의자 : 무기를 없게 군수 산업


1976년에 팔메는 선거에서 패합니다.

44년만에 사민당이 선거에서  것입니다.

44년만에 번도 적이 없는데 패했기 때문에 책임을 지고 팔메가 당대표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책임을 지는 것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인가 모르겠습니다.

매우 많은 문제들이 결국 담당자의 사임으로 끝나게 됩니다. 

사임했다고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죠.

자리라는 것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명예직인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임  팔메는 시간이 많아져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국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UN 사무총장이 이란-이라크 전쟁을 중재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를 했습니다.

팔메가 82 스웨덴 총리로 재집권하기 전까지 이란의 수도 테헤란과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오가며 전쟁을 중재했습니다.


스웨덴에서는  없이는 중립 없다 라는 철학이 있습니다.

스웨덴은 군사 대국의 지위를 유지하였기에 중립국의 지위 또한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체적으로 무기 개발에 힘을 많이 썻 굴직한 무기 회사 많습니다. 

내수시장이 작기 때문에 국민 총생산량의 대부분은 수출에 의존합니다. 

당시 스웨덴의 공군력을 미국 다음으로 

2010 기준 무기 수출 규모가 세계 9. 인구당으로는 최고입니다. 


스웨덴은 중립국, 국제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나라. 중립국은 전쟁 지역에 무기를 팔지 않는다. 라는무기판매이 있습니다.

무기 판매법에 따르면 전쟁 위험이 있는 국가에 무기를 팔지 못합니다.

오로지 있을지 모르는 자국의 방어가 목적인 경우에만  있지요.

사실 무기 소비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것은 전쟁이었기에 원칙과 정의로 외면하기에 실익이 너무 컸습니다.


안타깝게도 제도란 것이 완벽치 않아서, 틈새가 분명히 있기에 규정상 제조사는 전쟁 지역에 무기를 없지만

전쟁 지역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기준은 최종 도착지가 아니라 최초 배송지입니다.

그 말인 즉슨, 무기를 제조해서 직항으로 보내고 돌아돌아 보내면 된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배대지인 셈인 거죠.

입법 취지에 반하기는 하지만 기술적으로는 가능한 일입니다.


스웨덴 무기 제조사인 보포시라는 기업이 있습니다. 

370 전통을 가진 무기 제조 회사인데 걸프전에 이란에 계속 무기를 공급했습니다.


스웨덴 법에 따르면 이란은 무기 금지된 국가이나 이란으로 바로 보내지 않고 싱가폴, 두바이, 바레인을 거쳐 이란으로 무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1984 스웨덴 평화중재위원회에서 보포시를 고발합니다.

보포시 내부고발자가 사실상 무기를 팔았다고 양심 선언을 하기도 합니다.

이에 정부가 보포시의 거래 내역 공개를 지시하지만 보포시는 규정에 따라 거래를 것이지 위반을 것이 아니다라고 변명합니다. 

이러한 무기 거래에 팔메는 심한 배신감을 느낍니다. 자기는 평화를 중재하느라 동분서주하는데 뒤에서는 무기를 팔았다고 말이죠.

서방의 언론들은 겉으로는 평화 중재를 왔다갔다 하면서 무기 회사를 뒤로 팔았다고 스웨덴 사민당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웨덴의 이중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지요.

과연 팔메는 보포시의 무기 거래를 이전에 몰랐을까 궁금해집니다.


1985 총선을 앞두고 팔메는 무기거래에 대한 특별 조사를 지시합니다. 

총선 국면의 아젠다로 이용한 것이지요.

국민 여론은 중립국은 평화를 외치면서 무기를 팔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있었습니다. 

국민도 정치인도 진지하게 명분을 생각할 여유가 있는 나라라는 것이 부럽습니다. 

결국 보포시는 무기 영업 정지 명령을 받게 됩니다.


팔메 암살 24 전에 이란 방위 담당 외교관의 주문한 무기 지연에 대한 공식적인 항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화중재위원회 담당 위원이 보고 발표 1주일 전에 지하철역에 뛰어들어 사망하였습니다.

스웨덴 무기 거래 감독원이었기에 보포시의 무기 거래에 대해서 몰랐을 없는 사람입니다.


또한 음료수 포장으로 유명한 스웨덴 기업 테트라팩 상속녀의 편지가 있었습니다.

과일 주스 팩을 공급하는 스웨덴 10 회사의 상속녀가 편지를 보내와서 범인을 알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와 상관있고 무기 회사와 상관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이렇게 정보를 알고 있거나 관련자들이 모두 하나둘씩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진실은 점점 오리무중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헥헥, 내용이 길어지는군요.

총 4명의 용의자가 있는데,

오늘은 3명까지만 포스팅하고 다음에 마지막 용의자와 결론을 이야기하겠습니다.



팟캐스트 '그것은 알고 싶다'를 듣고 

개인적으로 기록한 공간으로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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