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로프 팔메 암살 사건의 미스터리 (1)

반응형

안녕하세요, 

풍류공대생 입니다~


오늘은 북유럽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북유럽 중에서도 스웨덴에 대해서 말이죠.


흔히 북유럽이 살기 좋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런 좋은 북유럽, 

그 중에서도 살기 좋은 스웨덴을 만든 1980년대 수상인 올로프 팔메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1. 스웨덴 사람이 존경하는 인물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일까요?

설문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1위는 특이하게도 넬슨 만델라 입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자국민이 아닌 것이 특이하네요.


더 특이하기로는 2위로는 엄마입니다.


3위를 기록한 사람이 오늘부터 포스팅하게 될 스웨덴의 수상이었던 올로프 팔메 입니다. 

존경하는 인물 순위 10위권까지 가장 많은 직업군은 바로 정치인입니다. 


한국 문화로 봤을 정치인이 존경 받기 쉽지 않지요.

국회에서 서로 싸우고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저 또한 어렸을 적부터 정치인에 대한 인식이 좋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스웨덴에서는 다르네요.

가장 존경 받는 스웨덴 정치인 올로프 팔메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2. 스웨덴 정치 문화


과연 복지국가 스웨덴 사람들이 뽑은 존경하는 인물 3위 올로프 팔메는 어떤 분일까요.

문재인 대통령의 자서전인 '운명'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과거에 올로프 팔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우선 스웨덴의 정치 풍토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스웨덴은 내각 책임제라 정책이 만들어지는 것에 호흡이 매우 깁니다. 

북유럽에서는 정치인이 정책을 만든 것이 아니라 정당이 정책을 만듭니다. 

한 정권이 세운 정책을 바로 다음 정권이 갈아엎는 경우가 잦은 대한민국과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팔메 시절에 노동 권리에 대해서 많은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노동 관련 법이 통과되고 팔메는 스톡홀롬 광장에서 우리나라로 치면 금속노조 앞에서 연설을 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에게 묻습니다. 


올로프 팔메 : "우리가 법을 통과시키는 년이 걸렸죠?"


시민들은 대답한다


시민들 : "80!!"


노동 관련 법을 만드는데 80년이라는 세월을 갈고 닦은 것입니다. 

팔메가 혼자 스스로 이러한 노동 관련 법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팔메가 아닌 정당이 법을 긴 세월 동안 만들었습니다. 

스웨덴에서는 당의 수명이 굉장히 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정책을 만들었다기 보다는 역사가 만든 것입니다. 

과거 44 동안 3명의 총리가 스웨덴에 재임했는데

총리가 바뀌었다고 정책이 끊기지 않고 꾸준히 논의되어 이어져 내려 왔습니다. 

설사 정권이 바뀐다 정책을 끊지 않는 문화가 스웨덴에는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정치 풍토는 스웨덴 뿐만 아니라 북유럽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북유럽 국가 중에 하나인 덴마크에서도 우리나라의 세월호와 비슷하게 페리가 바다에 침몰한 일이 100 전에 있었습니다. 

100 전의 일이지만 덴마크 국민들은 여전히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안전을 개선하며 입법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덴마크 정치 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이렇게 한 정치인 개인보다 정당의 역할이 더 돋보이는 정치 시스템에서 

올로프 팔메처럼 이렇게 카리스마를 가진 정치인이 많이 없습니다. 


어때요, 

지구 반대편 국가의 정치 지도자였던 올로프 팔메에 대해서 궁금해지지 않나요?






3. 팔메 재임 시절에 있었던 일들


올로프 팔메가 수상으로서 재임했던 기간은 1969년부터 1976년까지, 그리고 1982에서부터 1986년까지 입니다.

이 시기는 미국은 레이건 대통령이었고, 영국은 대처 수상이었던 시기였습니다.

세계가 우클릭을 하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이때 팔메는 그들과 정반대되는 정책을 도입해서 오늘날의 스웨덴을 탄생시켰습니다. 


올로프 팔메가 재임 기간 중 한 일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스웨덴 의회를 양원제에서 단원제로 바꾸었으며,

입헌군주제 국가로 왕의 공적인 역할을 축소했습니다. 

고용 노동법, 노동환경 개선에 관한 규정 노동조합의 환경을 크게 개선했으며

부유세, 징여세, 금융 소득세 세율을 인상하였습니다. 

팔메 이전에는 스웨덴의 세율이 유럽 평균이었으나 팔메 이후에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갔습니다. 

우리가 북유럽의 세율이 높다고 생각하는 오늘날 이미지의 국가가 됩니다.

그래서 기업가들에게는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 하나였습니다.

세금을 바탕으로 어린이집, 노인복지, 국민연금, 실업금여, 가족수당, 사고에 대한 지원, 건강보험 제도를 대폭 개선하였습니다.

장애인, 이민자, 저소득층, 한부모 가정, 노인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 정책 신설되거나 확대되었다.


2017 현재도 많은 국가들이 고민하는 문제들을 스웨덴은 1970년대에 이미 고민하였던 것입니다.


재임하면서 내각의 30% 여성으로 채웠으며,

현재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어 지금은 여성의원 비율이 44%입니다.

성별이 60% 이상을 차지하지 못합니다. 

대학등록금을 폐지하였으며,

세계에서 꼽히는 스웨덴의 복지 수준은 팔메 시절에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이때가 1970년대 라는 것이 매우 충격적입니다.





4. 올로프 팔메의 대외 활동


위의 내용은 모두 스웨덴 국내에서의 변화들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국제 활동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팔메는 스웨덴을 세계 외교사에 등장 시킨 인물입니다.

강대국이었던 미국을 매우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토론을 매우 잘해서 여론을 자기 편으로 만들었습니다. 

1968년도에 미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에 대해서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북베트남 대사와 함께 반전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학생  반전 시위 하는 것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있으나 한 나라의 장관의 입장에서 반전 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당시 팔메의 별명은 '베트남 외무부 장관'이었을 정도였습니다. 


1972 총리 재임 시절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 있는 총리 연설에서 미국의 베트남 폭격에 대해서 게르니카나 샤프빌의 대학살과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당시  미국의  대학살 피해자인 유대인외무부 장관이 매우 화가 나서 스웨덴과 외교를 1 이상 단절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와중에도 국민들은 여전히 팔메 총리를 지지했습니다.

스웨덴을 오고 가는 것이 불편하지만 나는 우리 총리가 자랑스럽다 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제국 주의와 침략 전쟁에 대해서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리하여 팔메는 세계의 양심으로 불리웠습니다. 

미국이나 소련의 편에 서지 않고 3세계의 입장을 대변했습니다.

스웨덴 수상 임기가 끝나면 UN 사무총장에 도전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1927년생인 팔메는 1986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서거 당시에 스웨덴의 수상이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식구들과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스톡홀롬에서 괴한의 총을 맞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5. 올로프 팔메 암살 사건


사건은 1986 2 28 금요일이었습니다. 


아침 11시에 오늘은 특별한 일이 없으니 팔메는 경호원들을 퇴근 시켰습니다.

18시에 퇴근하여 집에 도착했고, 20시에 아들 내외와 영화를 보기 위해 시내로 나갔습니다.

팔메는 영화관이 있는 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으며, 아들 내외가 극장표를 구입했습니다.


23 영화가 끝나고,

23 21분. 극장 근처의 거리를 걸었고, 팔메는 뒤에서 첫번째 총격을 당합니다.

번째 총소리는 옆에 있던 부인을 향했습니다. 

그러고선 범인은 도망갔습니다. 


23 22분. 주변에 있던 시민에 의해 경찰에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23 23분. 주변에 있던 시민에 의해 응급조치가 취해졌으나 맥박을 살리지는 못했습니다.

23 25분. 경찰차가 도착했습니다. 

23 26분. 앰뷸런스가 도착했습니다.

23 30분. 경관은 본부에 전화를 걸어 저격 당한 사람이 총리임을 알렸습니다. 

23 31분. 앰뷸런스가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1986 3 1 00 06분. 담당 의사는 울리프 팔메의 사망을 선고합니다.






6. 조사 중간 보고


암살 발생한지 25 후인 2011년에 경찰은 중간 보고를 발표했습니다.

25년 동안 수사 비용은 860억원을 사용했고

70만쪽에 달하는 수사 자료가 쌓였습니다.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에게는 5천만 크로나 보상금이 주어지기로 약속되었습니다.

이 5천만 크로나라는 금액이 얼마나 큰 금액이냐면 노벨상 상금이 천만 크로나입니다.

노벨상 상금의 5배나 되는 금액입니다.


내가 팔메를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25 동안 130여명 있었습니다.

25 동안 130여명밖에 안나오다니.. 평화로운 나라입니다.

아직까지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25년이라 종결될 했으나 여론이 좋지 않자 특별 범죄에 대해 공소 시효를 없애고 중간 보고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증거, 증인, 살인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없어지고, 늙기 때문에 사건을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7. 의문점


한 나라의 수상이 암살을 당했는데, 

수사 과정에서 의문점이 많습니다.


범인을 색출하기 위한 조치도 제대로 취해지지 않았습니다.

범인이 도주할 가능성이 있는 경로를 차단하는 것이 우선임에도 불구하고 도시를 기차로 빠져나갈 있는 다리를 사건 발생 1시간 후에나 막았습니다.

사건 발생 1시간 반이나 지나서야 군이 경계 태세로 움직였습니다. 

2시간 지나서야 공항을 폐쇄했습니다.


지하철 역에서 옷가지 가방이 발견됐는데 용의자의 차림과 일치했습니다.

계획되어 있는 범죄로 도주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총알 탄피도 경찰이 발견한 것이 아니라 주변 기자와 시민들이 발견했습니다.

총도 여전히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올로프 팔메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시대의 영웅이었던 스웨덴 수상 올로프 팔메의 암살에 얽힌 이야기를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서 해보겠습니다. 



팟캐스트 '그것은 알고 싶다'를 듣고 

개인적으로 기록한 공간으로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래의 공감을 눌러주시면 

저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