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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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제의 어제와 오늘



오늘은 북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오늘날 지구 상에서 가장 핫한 나라가 아닐까 싶습니다. 

국내외 언론에 하루가 멀다하고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북한이라는 나라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미지의 나라인데 언제부터 이 나라는 닫힌 나라가 되었을까요.


그런데 관련 문헌이나 자료를 찾아봤더니 옛날에는 북한이 아주 개방적인 나라 중에 하나였습니다. 

여기저기 이민도 받고 많이 내보내기도 하고요.

1950년대 이야기입니다. 


북한 경제의 어제와 오늘북한 경제의 어제와 오늘



1. 북한 조기 유학 프로그램


한국전쟁이 한창이었던 1952년에 북한이 처음으로 10살~16살 사이의 고아들을 구공산권의 소위 형제 국가들에 보내게 됩니다. 

과거 남한의 고아 수출과는 개념이 완전히 다릅니다. 

입을 덜 수 있다는 혜택도 있었습니다만 사실은 정권 차원의 그림이 뭐였냐면요.

나가서 잘 사는 나라의 언어와 문화와 산업을 배워와라. 

산업 인력을 국가 차원에서 조기 유학을 보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 사이의 아이들을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봤더니 100% 고아는 아니였고, 40% 정도는 당성이 좋은 사람들, 한국전쟁 당시에 북한정권 창출에 기여한 사람들의 자제, 국가유공자 자녀들을 보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대표적으로 헝가리, 폴란드, 체코 동부의 구사회주의 나라에 보냈습니다. 

구소련, 중국에 2만명, 동독의 드레센에 200명 베를린에 400명 등에 10년에 걸쳐서 2만 4천명 정도가 구공산권에 체류를 하면서 유학을 합니다. 


물론 북한의 돈은 단 한 푼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당시에도 북한에서는 아주 유리한 조건의 아이들을 보냈는데요. 

우리 아이들이 가면 잘 먹이고, 입히고, 산업 훈련까지 해서 보내라, 우린 여력이 없으니 돈은 100% 체류국가가 냈으면 좋겠다고 조약 문서 하나 없이 아이들을 10년동안 맡깁니다. 

거기에서 교육 과정에 불만이 있으면 북한 정부에서 굉장히 강력하게 항의를 해서 동독이나 이런 나라들이 쩔쩔 맺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굉장히 치열하던 때라 사회주의 나라들이 그들끼리 친했던 모양입니다. 

체제 선전용 목적도 있어서 우리가 형제국가의 아이들을 이렇게 잘 돌보고 있다, 아이들을 잘 키워서 공산주의를 설파하는 역군으로 키워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선동 매체였던 것입니다. 


평균적으로 6년 동안 가서 공부를 하며 길게는 10년까지도 체류한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성적은 꽤 좋았다고 합니다. 

동독에 자료가 많이 남아 있어서 그것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여기에서 동독 초등학교 평점 평균이 1점부터 6점까지 나눠져 있는데 1점이 제일 잘 한 친구고, 6점이 낙제점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조기 유학으로 넘어간 아이들의 평점 평균이 졸업할 때 보니까 1.9점 정도 였다고 하니 굉장히 잘하는 상위 그룹이었습니다. 

그 때에서도 수학과 과학에서 특히 소질이 있었다고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2. 귀국 후 북한 사회 부적응으로 인한 실패


전쟁 이후에도 북한이 그렇게 풍족한 나라가 아니였으니 오히려 나간 아이들은 풍족한 생활을 하고 더 좋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아이들이 외국에서 풍족한 생활을 한 게 북한으로 돌아가서는 독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넓은 세상에서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보니 우리나라 수준이 이것밖에 안되는 구나, 자유로운 대화와 토론이 안되는 1인독재체제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게 되고요.

북한 정부에서도 전후에 산업 인력으로 쓰려고 했는데 얘들이 유학 갔다와서 물을 흐리네~ 하고 굉장히 정치적으로 탄압했습니다. 


지금에야 우리나라도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만.

1970년대 초만 하더라도 남한이 북한보다 못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때 외국 유학해서 돌아온 분들도 비슷한 기분이었겠습니다. 

약간의 열패감이 있었겠습니다. 


1952년부터 시작된 이런 유학 프로그램이 10년 정도 유지가 되다가 북한에서의 이런 고민 그리고 나아가서는 사회주의 진영 내에서도 갈등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재정 부담이 막대하기도 했고요. 

1962년 즈음에 이 프로그램이 마감이 되는데요. 

유학을 갔다가 돌아왔던 아이들은 거기에서 따뜻한 옷을 입고, 중앙 난방되는 좋은 기숙사에서 살고 있다가 북한에 돌아와 평양이 아닌 다른 곳으로 소질과 무관하게 발령을 받게 됩니다. 

주로 중화학분야로 배치가 되는데 여기에서 갈등을 느끼면서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리고 이 와중에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1959년에 11명의 북한 유학생들이 서독으로 망명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사실상 북한 유학 프로그램이 마감을 하게 됩니다. 




3. 북한의 경제성장률


조금 다른 이야기 입니다만 북한 그동안 경제 성장이 잘 안되는 나라로만 알고 있었는데요. 

작년 통계를 보니 우리나라 경제성장률보다 북한의 경제성장률이 더 높았습니다. 

2016년 북한의 경제성장률이 3.6%였고, 남한은 2.8%로 우리나라보다 높았습니다. 

이 통계에서 들어있는 함정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2015년에 워낙 심한 가뭄을 겪었던 터라 전기 생산량이 급감을 하면서 기저 효과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 나오지 않은 2017년 경제성장률에서도 아마도 남한보다 경제성장률이 높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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