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알싫][아웅산수지] 2. 독재 후의 독재 후의 독재
지난 포스팅에 이어 아웅 산 수지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해 볼까 합니다.
1. 2기 군사 정권
- 1988년 9월 18일
- 집회를 막고자 시민 1만명을 죽였다.
- 3천명의 학생들이 반군을 조직하였다.
. 버마 학생 전선이라 불린다.
. 버마족 엘리트 조직이다.
. 과거 8888 항쟁을 조직했던 경험이 있어 노련했다.
- 버마 학생 전선과 소수 민족이 연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소수 민족과 화해한다.
. 카렌 족과 버마 학생 전선을 제외하고 평화협정을 맺는다.
. 30%에 해당하는 소수민족을 유화하려고 한다.
- 민족민주전선(NLD) 창당
. 아웅산 수지가 야당 연합체 창당하였다.
. 총재는 아웅산수지이나 부총재는 네윈 정부 때 실각 당한 군부 출신이다.
- 미얀마로 국호를 바꾸었다.
. 미얀마는 문어고, 버마는 구어체다.
. 버마라는 호칭이 영국에 의해 서양에 알려졌다.
. 식민 잔재의 청산 중에 하나다.
. 아웅산 수지는 '버마'라고 불러 달라 요청한다.
- 사회주의를 포기한다.
- 랭군을 버리고 산악 지대인 생뚱 맞은 네피도로 수도를 옮겼다.
- 헌법을 변경하였다.
2. 아웅산 수지
- 전반기
. 1945년 출생
. 막내딸로 태어났다.
. 아버지의 암살로 정부의 강압에 의해 외국으로 나갔다.
. 외국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 UN 서기관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 1985년에 일본 교토 대학에서 아버지에 대해 공부하였다.
. 1988년 4월에 어머니가 건강이 좋지 않아 귀국한다.
그 때가 8888 항쟁이 시작된 시점이다.
자신의 입장에 발표한다.
이를 계기로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입장 발표만 했을 뿐 8888 항쟁의 전선에 직접적으로 아웅 산 수지가 한 일은 없다.
. 2006년 미얀마 수도를 옮겼다.
. 아웅 산 수지는 네 윈 비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아웅 산 수지의 어머니는 네 윈 정부 시절 외교관이었다.
그렇게 어머니가 번 돈으로 아웅 산 수지는 외국에서 공부를 한 것이다.
- 후반기
. 좋은 이미지
: 허상이라도 상이 커지면 실제가 된다.
: 모든 정치인이 다 그렇다.
. 가택 연금
: 30년동안 연금 당한다.
: 선거, 종족 분쟁이 생길 때마다 가택 연금 당한다.
: 군부의 유일한 정적이기 때문이다.
: 가끔 창문으로 얼굴을 내미는 것만으로도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 정치인으로서의 창문을 내미는 타이밍에 대한 감각은 매우 뛰어났다.
3. 샤프란 혁명
- 2007년에 발발한 혁명이다.
- 원인
. 물가 인상 문제
: 기름값이 9배가 올랐는데, 다시 500% 올린다고 정부가 발표한다.
: 당시 국제 유가는 아무런 문제는 없어 가격을 올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 승려와 군인 간의 충돌로 시작하였다.
: 스님들이 시위의 주체가 된다.
: 샤프란은 승복을 의미한다.
- 진행
. 스님들이 아웅 산 수지가 가택연금 당한 곳으로 진행하였다.
. 아웅 산 수지가 현관까지 나와 외신에 찍힌다.
: 창문을 여는 타이밍으로 세계를 들었다 놨다 한다.
: 이것은 능력이다.
. 규모는 8888 혁명 때보다 작으나 SNS와 카메라로 세계에 널리 퍼지게 된다.
. 200여명이 죽었다.
- 결과
. 아웅 산 수지의 힘이 건재함을 느낀 2기 정부는 헌법을 개정한다.
. 이전까지는 헌법이 없었다.
. 헌법
: 군부가 임명할 수 있는 국회의원 자리 수가 25%나 된다.
: 남편이나 자녀나 자녀의 배우자가 외국인이면 미얀마 국민이 아니다.
아웅 산 수지를 겨냥한 조항이다.
아웅 산 수지의 배우자는 외국인이다.
: 군 밑에 삼권분립.
: 군법은 헌법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 대통령의 의사와 상관없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할 수 있다.
: 헌법 개정
국가 기본 원칙의 개헌의 경우 75% 이상이 찬성 해야 한다.
군부가 국회의원의 25%를 차지했으니 75% 이상의 찬성을 얻어 개헌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해 놓고 형식적 민주주의로 간다.
4. 탄쉐이 정부
- 2011년
. 군부는 정권을 포기하고 민간에 이양한다고 선언한다.
. 전역한 군부 인사로 정권 교체 : 군부 정권은 쫀 적은 있어도 진 적은 없다.
. 형식적 민주화다.
. 글로벌화를 선언한다.
. 이후 아웅 산 수지는 가택 연금에서 풀려나 5년째 자유로운 상황이다.
- 미국의 입장
. 중국의 견제를 위해 미얀마의 위치가 중요해 졌다.
. 클린턴 국무장관이 군사적 제제 풀겠다고 약속 하였다.
. 오바마 대통령도 방문하였다.
: 테인세인 대통령과 아웅 산 수지가 같이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에게 경제 제재를 완화해달라고 요청하였다.
. 경제 제재가 완화된다.
5. 아웅 산 수지의 하원 의원 당선
- 아웅 산 수지 나이 6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국가 정치에 정식으로 입문하였다.
- 군부의 후예와 함께 미국에 가서 처음으로 정치력을 발휘하게 된다.
. 군부의 말을 대신 전해주는 것으로 정치력을 처음 발휘한 것이다.
- 2015년 선거
. UN이 처음으로 미얀마 선거에 개입하였다.
. 아웅 산 수지의 승리를 이끌었다.
. 정권 이양을 위한 위원회가 꾸려졌다.
. 강력한 집권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다음은 아웅 산 수지가 당선 후에 한 말이다.
: 내가 집권 당으로서 모든 결정을 자신이 하겠다
: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되든 상관없다.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겠다.
6. 아웅산 수지의 미얀마
- 미얀마의 문제
. 민주주의
: 버마 족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다.
: 군부의 입장이 중요하다.
외국인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법을 개정하기로 현재 군부가 약속을 한 상태이다.
경찰권 마저 없는 대통령의 적은 권한이 문제다.
행정직 공무원 수장의 직위일 뿐
비상 사태 선언 될 가능성 있다.
. 민족 문제
: 버마 외의 족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다.
: 영국이 만든 문제이기도 하다.
: 버마 학생 전선에 대한 아웅 산 수지의 정치력을 기대해 본다.
. 종교 문제
: 예수교를 믿는 카렌 족에게 중요한 문제이다.
: 군부 정권이 만든 불교 문제 또한 심각하다.
- 아웅산 수지에 대한 생각
. 군부 밑에 삼권분립이 있는 군부 정권과 다를 바 없는 독재를 꿈꾸는 것만 같다.
. 버마 학생 전선을 끌어 안을 의지가 없어 보인다.
. 재벌로부터 돈을 받은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 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 그저 아웅 산의 딸일 뿐이다.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 자국민을 위한 메시지가 없다.
. 국내 이슈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 결론
. 희망이 단 하나 뿐인데 그 희망에 실망했을 경우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 민주주의라는 것은 각자가 꿈 꾸는 유토피아를 실현시키기 위한 난장판인 거 아닐까.
. 단 하나의 희망을 만들지 말아라.
팟캐스트 '그것은 알고 싶다'를 듣고
개인적으로 기록한 공간으로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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