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 역사

팟캐스트,/이이제이|2017. 10. 5. 14:09
반응형

안녕하세요,

풍류공대생 입니다~



여러분들은 야구 좋아하시나요?

저는 사실 야구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요,

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내가 투수해보겠다고 다툰 정도?

그 정도의 기본적인 야구 경험과,

발야구 경험 정도? ㅋ


야구보다 축구지! 라는 마음으로 야구에 큰 관심은 없었는데요,

주변에 광주 지인이 있어서 

그분으로부터 올해 기아 타이거즈의 선전에 대해서 귀가 닳도록 듣고 있지요,


오늘은 대한민국 프로야구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프로축구에 대한 관심보다 프로야구가 더 인기가 많은거 같아요,

프로축구는 해외축구만 인기가 좋지요.


한국 프로야구에 담긴 

역사적인 뒷이야기를 알면 더 재밌게 야구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1. 세지마 류조와 전두환의 관계


한국 야구를 이야기는데 왜 전두환 대통령이 나오는가,

네, 이 분이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한달

일본의 세지마 류조 만납니다. 


세지마 류조.

그는 일본의 군인이자, 기업인이자, 정재계의 막후 실세입니다. 

한국과 일본 정치의 큰손이지요,

한국의 군부독재 세력과 일본 극우세력, 친일반역 세력들은 서로 친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그에게 많은 도움을 요청했지요,

그런 세지마 류조가 전두환에게 올림픽을 개최하라고 코치합니다. 

전두환은 쿠데타로 인해서 정권을 차지했다는 것에 큰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자신의 정당성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올림픽 개최라는 카드를 사용한 것입니다. 


1980 신라 호텔에서 삼성 회장 이병철의 소개로 전두환은 세지마 류조와 만납니다. 

그 이후로도 세지마 류조는 지속적으로 한국 정치에 간섭합니다. 


예를 들어, 비상계엄 확대가 있습니다. 

정부가 북한의 남침설을 주장할때 일본이 자료를 제공해 주었는데,

이는 세지마 류조를 통해서 받은 자료입니다. 


당시 일본도 올림픽 개최 욕망이 있었는데, 

그는 막후 정치인답게 일본 나고야 올림픽 말고 한국에 올림픽을 개최 위한 조언을 많이 합니다.






2. 올림픽 유치 준비


세지마류조의 조언을 받은 전두환은 올림픽 유치를 지시합니다.

그러나 초반 여론은 반대 분위기가 컸습니다. 

경제적으로 이득이 없다는 판단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두환의 강한 의지로 계속 추진했습니다. 

본인의 정당성에 대한 의구심을 빨리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하니깐요.

해외에서도 많은 도움이 있었습니다. 

중계권료를 거래로 아디다스가 한국에 협조하였고, 

일본에서도 세지마 류조가 협조하였습니다. 


이를 토대로 올림픽 유치단을 결성하여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갑니다. 






3. 국민 우민화 정책


세지마 류조 각본, 

전두환 연출의 올림픽 개최로 인해 

'전두환 물러가라' 여론이  들어갔습니다. 


모두들 정치엔 관심 없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에만 관심있었습니다. 

당시 정치 탄압을 받았던 김대중에 대해 대부분의 국민들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를 3S 정책이라고 합니다. 

스포츠, 스크린, 섹스.


올림픽과 프로야구 등의 스포츠 정책,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어낸 스크린 정책,

집장촌과 통금 시간을 없애고, 카바레 같은 유흥과 성 관련 산업을 장려하였습니다. 






4. 프로축구 vs 프로야구


국민 스포츠로 여론의 주목을 받을 종목을 고르는 데 있어서 

후보는 축구와 야구. 두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대한민국 프로축구는 국가대표 경기 말고는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는군요.


반면, 고교야구는 당시부터 유명했습니다. 

전두환 정부는 스포츠 장려 정책의 세부 종목으로 프로야구를 결정하였습니다. 


이에 전직 야구선수이자 라디오와 TV에서 야구 중계를 도맡아 독보적인 해설가로 유명한 이호헌씨를 호출합니다. 

프로야구 창립 계획서를 제출토록 지시합니다. 

구체적 입안과 함께 말이죠,

또한 재미교포인 홍윤희씨가 전국 야구장에 조명 시설 설치 제안서 제출합니다. 


이러한 프로야구 창립에 대해서 야구협회의 반발이 심하였습니다. 


표면적인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반대를 하였습니다. 

1. 시기상조론 : 아직 한국의 야구가 프로야구를 출범할 정도로 성숙되지 않았다. 

2. 운동장과 선수 부족 : 운동장과 선수들에 대한 인프라가 아직 부족하다. 

3. 국가시책으로 야간 경기 금지 : 당시에는 밤에 경기를 하는 것이 금지였습니다. 

4. 안정적 직장을 버려야 하는 선수들의 반발 : 프로라는 이름으로 돈과 실력으로 선수이 평가되기에 경쟁에 밀린 선수들은 안정적인 직장을 버려야 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야구협회의 반대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프로야구 협회가 생기면 본인들 밥줄이 없어지기 때문이지요.

과거 다양한 기업에서 프로야구 창설을 준비한 전적이 있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반대를 한 것이지요. 







5. 프로야구 창설




드디어 이호헌씨가 프로야구 창립계획서를 제출하였습니다. 


경기를 하려면 팀을 나눠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각 지역별로 총 6개의 구단을 구성하였습니다. 

그리고 6개의 지역과 재벌 총수의 고향 또는 연고지를 프로팀의 연고지로 연결 시킵니다.

 

1. MBC 청룡의 서울 지역

: 당시 KBS와 라이벌 관계에 있었던 MBC에서 중계권에 대한 이익으로 인해 프로야구를 적극 찬성하였다고 합니다.

: 가장 인구가 많은 서울 지역을 MBC 연고지로 결정됩니다. 

: 이후에 LG 트윈스 인수합니다. 

: 지금의 잠실종합운동장이 LG의 홈그라운드지요.


2. 이병철 삼성의 대구경북 지역

: 오늘날까지 삼성 라이온즈의 연고지가 됩니다. 


3. 신격호 롯데의 부산경남 지역

: 처음에 롯데 회장 신격호는 롯데의 연고지로 부산 말고 서울로 하고 싶어했습니다. 

: 나라의 수도를 연고지로 하고 싶어 했겠지요.

: 본인이 주로 지낸 일본의 요미우리 처럼 명성이 있는 서울로 희망하였지만 좌절됩니다.

: 롯데 자이언츠의 탄생이지요. 개인적으로 롯데는 부산을 연고지로 가진게 오히려 득이라고 생각합니다. 


4. 김현철 삼미철강의 경기강원 지역

: 전두환 정부는 경기강원 지역을 현대에게 주고자 계획하였습니다.

: 그러나 정주영 현대 회장은 처음에는 프로야구팀을 설립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 올림픽 개최에 올인하고 싶다는 표면적인 이유를 제시하였으나,

. 사실 정주영은 축구는 못하고 야구를 싫어했다고 합니다. 

. 야구를 싫어하는 이유는 야구의 때리고, 훔치고, 병살 등등의 이런 규칙을 매우 싫어했다고 합니다. 

: 1995년에 현대가 인수해 현대 유니콘스 됩니다. 

: 이후에 넥센 히어로즈로 바뀌게 됩니다. 


5. 박건배 해태의 호남 지역과 쌍방울의 전북 지역

: 박건배의 해태가 호남 연고지를 차지하게 됩니다. 

. 삼양, 금호그룹 모두 거절하고,

. 대한생명 63빌딩도 거절하였으며, 

. 해태가 결국 승인하여 호남 연고지로 결정됩니다. 

. 2001 KIA가 인수하여 기아타이거즈가 됩니다. 

: 1991 전북을 연고지로 쌍방울 레이더스가 창단합니다. 

. 1999년을 끝으로 해체되었으며, SK 와이번스 그대로 인수합니다. 


6. 충청 지역

: 동아건설은 프로야구팀 창설을 거절합니다. 

: 다음 기회를 얻은 박용건의 OB(두산) 서울 연고지를 달라고 주장합니다. 

. 서울은 이미 MBC 청룡이 연고지로 하기 때문에 곤란합니다. 

. 이에 박용건은 안되면 수도권인 경기강원이라도 달라고 주장합니다. 

. OB와는 아무런 연고없는 충청도 대전을 연고지로  없다는 이유지요.

. 그래서 다시 제일 서울을 둘로 나누자고 주장합니다. 

. 일단 개막전은 대전에서 시작하고 3 후에 서울로 연고지를 바꾸는 조건으로 두산베이스를 만듭니다.

. 이렇게 잠실야구장을 LG와 같이 홈그라운드로 하는 두산 베어스가 탄생한 것이지요. 

. 그래서 LG와 두산 야구팀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 OB 서울로 올라가자 대전,충남, 충북의 연고지가 공석이 되자, 빙그레 이글스를 탄생시킵니다. 

후에 한화 이글스 변경합니다. 


이렇게 초반 6개의 지역에서 야구팀이 출범하였고, 

2013 경남 창원 연고지의 엔씨소프트의 NC 다이노스가 창립되었고,

2015 수원을 연고로 KT 위즈가 창립되었습니다. 





6. 국민 우민화 정책의 성공


전두환의 3S 정책 중 스포츠 분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1982 드디어 한국 첫 프로야구가 개막되었습니다. 

개막전은 우승 후보였던 삼성과 MBC 경기였습니다. 

무려 전두환이  시구를 보입니다. (구글에서 이미지를 보니 해맑군요)

이 날 이만수의 홈런이 터졌으며,

연장전에 돌입하였고, 만루 굿바이 홈런도 나오게 됩니다. 

한 해 관중수는 143만에 이릅니다. 

지금은 600만명 정도가 관람한다고 하니 국민 스포츠답습니다.


1983 프로축구가 개막합니다. 

민속씨름도 개막합니다. 

당시 씨름선수인 이만기의 인기가 지금의 축구, 야구선수 못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섹스 정책의 일환으로 청량리와 같은 지역에 홍등가가 성행했습니다. 


또한 스크린 정책도 성공적이었습니다. 

애로물이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청계천에서 국적 불명의 포르노 테이프도 많이 팔렸습니다. 




한국 프로야구를 이야기하는데,

정치 공부까지 하게 되다니.


미국의 경우 프로야구팀은 각 지역을 대표하는 명사로 명명되었는데,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기업의 홍보 활동의 일환으로 

대기업 우대 정책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니 씁쓸한 면이 있네요.


한국 프로야구를 응원하는데

뒷배경 이야기를 적어봤는데요,

약간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


저도 이참에 응원하는 팀을 만들어 볼까요? ㅋ






팟캐스트 '이이제이'를 듣고 

개인적으로 기록한 공간으로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래의 공감을 눌러주시면
저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


728x90
반응형

'팟캐스트, > 이이제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중동 특집 2. 동아일보  (0) 2017.10.14
조중동 특집 1. 조선일보  (0) 2017.10.12
노무현 대통령 간단 정리 3  (0) 2017.10.02
노무현 대통령 간단 정리 2  (0) 2017.10.0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