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간단 정리 3

팟캐스트,/이이제이|2017. 10. 2.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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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풍류공대생 입니다~


팟캐스트 [이이제이] 대한민국 대통령 특집으로 

노무현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습니다.


앞선 포스팅에서는 변호사 및 국회의원 시절의 노무현을 알아보았는데요,

(아래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노무현 대통령 간단 정리 1 변호사 시절

노무현 대통령 간단 정리 2 : 국회의원 시절



이번 포스팅에서는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을 알아보겠습니다.




1. 대통령 시절


예상치못한 젊은 층의 결집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자 

곧이어 대대적인 노무현 대통령 흔들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초선 의원들이 여의도 극단을 만들어 '환생경제'라는 이름의 연극을 만들었습니다.

이 연극에서 주인공의 이름은 노가리입니다. 

아들 경제를 다시 살리며 연극 마지막에 아들이 아버지 노가리를 죽입니다.

노가리를 상대로 원색적인 욕설도 난무합니다. 

이러한 연극을 보는 박근혜는 웃으며 좋아했다고 하는데,

지금같으면 상상도 못할 연극입니다. 


이러한 대대적인 노무현 흔들기의 정점은 탄핵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 1년도 안돼서 탄핵 이야기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에서 탄핵 소추안을 결의하였습니다. 

대통령이 총선에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통해 중립 입장을 가지지 않았다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는 억지에 불과합니다. 

어느 대통령이었던 간에 본인의 여당에 대해서는 항상 우호적이었습니다.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간 김영삼, 이명박 대통령 시절 때는 

중앙선거위원회에서 대통령 행동에 대해 자제 발언만 것과 비교하면 과한 처사였습니다. 

트집 잡기에 불과한 것이지요.


이어란 탄핵 소추안 결의에 대해서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발표합니다.

이 연설에서 노무현은 본인이 잘못한 모르겠으나 언론이 시끄러우니 사과하고 넘어가자고 연설을 하게 됩니다.

권모술수 없이 노무현 답게 정면승부로 맞서게 된 것입니다.


이에 상황은 심각해져서 탄핵 소추안 상정 가결에 이르게 됩니다.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을 일부 국회의원들이 탄핵하는 꼴이 된 것입니다.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진행되어 가결되자 한나라당, 민주당 의원들은 대한민국만세를 외쳤다고 합니다.


당시 정치를 풍자하는 내용의 윤민석의 '너흰 아니야' 라는 노래가 팟캐스트 중간에 나오네요,

한번쯤 재미로 들어보세요~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탄핵을 주장하였지만 

국민들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탄핵 반대 촛불 시위를 하였습니다. 

이 시위에서 국정원 블랙리스트에 있는 문성근이 연설을 합니다. 


이러한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탄핵 역풍을 맞게 됩니다. 

한나랑당 대표인 최병렬은 탄핵 주장을 책임지고 사퇴하고,

그 자리에 박근혜가 대표가 되어 앉게 됩니다

그 해 총선에서 탄핵 역풍을 맞았음에도 한나라당은 121석을 얻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도 대통령 탄핵 기각 판정 내려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로 복귀하였습니다.





2. 퇴임 후 


임기를 마치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관련 정무 자료를 모두 넘겨주고,

고향인 봉하마을로 귀향합니다. 

그 동안의 임기를 마친 대부분의 대통령은 서울에 머물며 자신만의 계파를 만듭니다.

그러나 노무현은 지역감정을 만들지 않게 귀향을 결심합니다. 

고향에 내려가서 "야 기분 좋다" 라는 어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퇴임까지 많은 네티즌들의 비판을 받았지만 

고향에 내려가서 환경 운동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봉하 마을 오리농법이 그 예입니다. 

이러한 노무현을 보기 위해 하루 평균 1 명의 시민들이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보수 정부는 이렇게 여론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노무현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됩니다. 


그 첫 공격이 노무현의 국가 기록물 유출 논란입니다. 

청와대의 공식 자료를 봉하 마을로 유출했다고 이명박 정부가 주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에 노무현은 전직 대통령은 자료를 권한이 있다고 반박하였고, 본인은 사본을 가져갔기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노무현은 참여 정부의 모든 행정 자료를 기록하여 이명박 정부에 남겨줬습니다. 

기록에 대해 애착을 갖는 노무현의 성격상 일부러 꼼꼼이 챙겼는데  정부와의 마찰이 생긴 것입니다. 

이 당시 모든 것은 노무현 탓이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이에 노무현은 또다시 정면으로 상황을 마주하고자 이명박에게 공개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노방궁 사건이 있었습니다. 

홍준표가 상도동과 봉하 마을을 직접적으로 비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상도동은 좁아서 주차할 공간도 없지만 봉하마을은 매우 넓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서울하고 경상남도랑 비교하다니.. 안타깝습니다.

봉하마을 사저를 지은 정기홍 건축가가 반박하려 하자 노무현은 참으라고 전했다고 합니다. 


또한 노무현의 형 노건평 사건이 있었습니다. 

세종 증권이 농협에 인수되도록 도와주고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것입니다. 

청렴하다고 주장한 노무현의 낙담은 매우 컸습니다. 


이어서 태광실업 박연차 구속 사건이 터졌습니다.

노무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뇌물을 주었습니다. 

원래부터 노무현의 아킬레스건이라고 불리며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검찰이 전방위적으로 주변 참여정부 인사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측근들이 검찰에 고초를 당하자 노무현은 미안한 마음에 심정을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금전적으로 노무현을 지원했던 강금원 사장은 수사로 결국 자살을 하고 맙니다. 

모든 보수 진보 인사들이 노무현을 융단 폭격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부인인 권양숙 여사도 10억을 받은 혐의로 조사가 시작됐고, 아들 노건호도 구속되고 맙니다. 

부인이 받았으며 자신은 모른다고 핑계를 대냐며 국민들이 노무현을 맹비난하였습니다.

노무현은 검찰에 증언이 아닌 증거를 대라고 정면 승부로 맞서 싸웁니다. 

4 30일 노무현 대통령까지 직접 검찰에 소환합니다. 

과거 김영삼 정부에서 전두환을 소환한 것처럼 같은 그림처럼 보여줘 언론에서 노무현을 망신 주기 위함입니다. 

검찰은 노무현과 박연차를 대질 심문하려고 하였습니다만 노무현은 계속 거부하였습니다. 

끈질기게 검찰은 노무현과 박연차랑 인사라도 하라고 주선하지만 노무현은 박연차를 만나서 그냥 위로만 하였습니다.

검찰은 박연차가 생일 선물로 노무현에 1억짜리 시계를 사줬다고 기사를 내지만 이는 거짓으로 밝혀집니다. 

 

도덕적으로 문제였지만 법적인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하였습니다. 

검찰이 증거가 아닌 상식을 적용하며 유죄를 억지로 만든 것입니다. 

노무현을 압박하기 위해서 검찰은 구속 여부 결정하는 시간을 끌었습니다.






3. 자살


본인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극도로 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2009년 5월 23일 컴퓨터로 유서를 작성하고 아침에 경호원을 불러 뒷산인 봉화산으로 등산을 갑니다.

등산로를 올라가다 힘들다며 부엉이 바위로 발길을 돌립니다. 

경호원에게 부엉이 바위에 부엉이가 사나? 담배 있냐? 고 경호원에 물었습니다.

경호원은 가져올까요? 하니 됐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정토사에 스님이 계신지 확인해보라며 경호원을 보낸 사이에 노무현 대통령은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합니다.

담배 있냐고 물으셨다는 말을 들은 유시민 의원이 나중에 담배를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4. 참여 정부의


노무현 정부의 공은 다음과 같습니다. 


권위주의 청산하려는 노력이 보였습니다. 

일반인이 방송에서 대통령과 토론하고 검사와의 대화를 통해서 권위주의를 탈피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치 개혁을 꿈꾸었습니다. 

호남 영남 대결 구도의 지역 주의를 극복하고자 하였습니다. 

노무현은 호남 지역에서 지지를 받은 경남 출신입니다. 

이에 일환으로 세종시를 포함한 6개의 혁신 도시를 지정하기도 합니다. 


또한 자주 국방을 표방하였습니다. 

노무현은 대단한 긍정적인 의미의 밀리터리 덕후였다고 합니다. 

국방 개혁 2020을 발표하여 전시 작전 통제권을 주장하여

한반도 평화를 추진하였습니다. 

군장성들에게 '부끄러운 알아야지' 라는 어록을 남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외교적 성과로는 

중국과의 관계가 매우 좋았습니다. 

반면 일본의 독도 주장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대응하였습니다. 

일본 국왕과 악수 때도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하였습니다. 


경기도 좋아서 당시 주가는 700P에서 2000P 까지 상승합니다. 

물가상승률 또한 역대 최저를 기록하였습니다. 

임기 5년동안 평균 물가상승률은 2.9%였는데 이는 전두환 때보다 낮은 수치입니다. 




 

5. 참여정부의 과


그러나 참여정부의 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FTA를 꼽습니다. 

정책적으로 시도할  있는 정책이었으나 오류가 있었습니다. 

서민들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아줬는데 FTA 체결해서 자기들을 외면하였다고 많은 비난을 하였습니다. 


또한 이라크 파병이 있습니다.

제국주의의 명분 없는 전쟁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전쟁에 참여하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국제 정세상 참여하지 않을수 없었고, 이에 비전투 요원으로만 파병토록 최대한 변경하였습니다.


그리고 부동산이 폭등하였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IMF 극복의 일환으로 과도한 규제 완화에 따른 피해를 막고자 규제를 강화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독한 규제가 나중에 풍선 효과가 되어 터져버린 경우입니다. 


마지막으로 양극화가 더 심해졌습니다.

분배를 강화해서 해소하려고 했으나 반대로 양극화되었습니다. 

실효성을 거두지 못한 정책들이 많았습니다. 

이는 재벌 개혁의 실패와 연관있습니다. 






6. 결론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 정부의 과오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보복성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은 취하고 잘못된 정책은 시정하여 중장기적으로 정책을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하나의 법안을 만드는 데 몇십년이 걸리는 스웨덴의 정치 풍토가 다시 한 번 부럽네요.


간단하게나마 정리를 마치고 나니 

인간 노무현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좌우를 떠나 정치적 자유를 주장할 있는 나라가 되길 바라며 

마지막으로 1988년 7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 시절 한 말을 인용하며 

노무현 대통령 간단 정리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경하는 의원 여러분! 그리고 국무위원 여러분!
부산동구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된 노무현입니다.
국무위원 여러분, 저는 별로 성실한 답변을 요구 안 합니다. 성실한 답변을 요구해도 비슷하니까요.
청년 학생들이 죽어가는 것은 감옥에 가서 참회해야 될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온갖 도둑질을 다 해 먹으면서 바른 말 하는 사람 데려다가
고문하고 죽이는 바람에 생긴 일이니까 그 사람들이 임명한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에게 무슨 대책이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물으면 제가 그르지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팟캐스트 '이이제이'를 듣고 

개인적으로 기록한 공간으로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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