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의 궁금한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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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특집 두번째 시간입니다!

생각보다 노벨상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았어요,

그냥 노벨이라는 사람이 인류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주는 상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제라도 알게 되니 다행이네요 :)


그러면 오늘도 이어서 노벨상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할까요?

지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노벨상 이야기 (1)






1. 노벨상 후보 공개 가능 여부


그 해의 노벨상 후보야 당연히 비밀을 유지하는 게 맞지요. 그러나 지난 노벨상에 대한 후보는 어떻게 할까요?

작년에 내가 고은 시은을 추천했다고 가정합시다. 그런데 고은 시인이 노벨상을 받지 못했어요 ㅠ

그러면 이미 지난 일이니깐 밝히는 것이 가능할까요?

노벨상 후보자들은 50 지나면 과거 공개 가능합니다. 

즉, 2017년인 올해는 1901 ~ 1966년까지의 후보자들을 공개 가능합니다. 1901년부터 노벨상을 주기 시작했으니 지금으로부터 50년 전까지 공개 가능한 것이지요. 

그리고 위원회의 50 회원이 어떤 후보자한테 투표했는지도 공개합니다. 

50년을 지나고 나서야 공개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가까운 시기에 공개를 하면 다음 노벨상에 대해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으니 이를 막고자 위함이겠지요.


1901년에  노벨상 물리학 수상자는 빌헬름 뢴트겐입니다. X-ray를 발견한 분이시죠.

스탈린도 1945년, 1948년에 2 세계 대전 종결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평화상 후보에 오른 있었습니다. 

총 91 후보에 올라 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사회운동가 제인 아담스도 있습니다. (중복가능하기 때문에 91번이라는 숫자가 가능합니다)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는 처음 오르자마자 바로 수상하였습니다






2. 노벨상 수상 조건


그러면 도데체 어떤 분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건가요?

가장 유명한 조건은 사람 받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후에 수상한 사람이 2 있습니다. 

이에리 각셀 칼펠드 스웨덴 시인으로 1931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961년에 노벨 평화상으로 다그 하마숄드 UN 사무총장이 받았습니다.

모두 후보에 오른 이후에 선정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사후에 수상을 한 것입니다. 

 

시상식은 12 10일이 이루어집니다. 

살아 있어야 한다는 규칙 때문에 1974년에 규정을 재정비합니다. 

수상자 발표일인 10월에 살아 있어야 한다로 규정이 바뀌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의 나이가 아주 많습니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상을 수여할 만큼 증명이 충분히 경우에 수상하기 때문입니다. 

초기에 암을 유발하는 것은 기생충이다 라는 내용으로 생리학상을 수상한 과학자가 있었는데, 수상 후에 더 연구해보니 기생충이 암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어 곤란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수상 실적과 시간차를 두고 수상하기 때문에 수상자들은 대부분 나이가 매우 많습니다. 

위대한 발견도 발견이지만 장수해야 받을 수 있는 상이지요.


1901 ABO 혈액형을 발견한 사람도 1930년에 노벨 생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지만 상대성 이론으로 상을 받은 것이 아닌 광전효과를 입증한 성과로 받았습니다. 

상대성 이론은 검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받지 못했습니다. 

상대성 이론은 법칙이 아니라 이론이었기 때문이지요.


아인슈타인의 노벨상 수상까지는 일화가 있습니다. 

1921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아인슈타인으로 결정하여 편지를 보냈는데 마침 아인슈타인은 중국에 있어서 물리적으로 12월까지 스웨덴으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위원회는 1921년에는 노벨 물리학상은 없고, 1922년에 아인슈타인 수상으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1922년에 미국에서 순회하는 중이어서 독일 대사관이 대리 수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1901년에 아인슈타인은 이미 스위스 시민권을 받았습니다. 

1923년에 결국 아인슈타인이 와서 노벨 강연을 하는데 본인이 주제로 받고 싶었던 상대성이론이 아니라 광전효과로 받았기에 노벨상 수상 소감 강연에서 상대성이론에 대해서만 주구장창 이야기하고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벨상 받기 2 전에 아인슈타인은 이혼하였는데, 위자료로 노벨상금의 50% 준다고 써놓았고, 실제로 노벨상금 전액을 전부인한테 주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노벨상을 받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1921년에 타러 안갔을지도 모르겠네요 ㅋ






3. 성취 기준


노벨상을 수상하는 기준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노벨 문학상 같은 경우는 하나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사람의 전체 작품의 가치를 봅니다. 

노벨 평화상 또한 사람의 평생 헌신한 내용 봅니다. 

아주 뚜렷한 성과나 결과가 아니더라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매달라고 싸워온 사람한테 수상합니다. 

우리나라의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도 이에 해당합니다. 

평생 한반도 민주주의와 화해를 위해 투쟁하였기 때문에 수상되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단체에 주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웨덴 노벨 박물관에 가면 수상자의 소장품을 전시하는 코너가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사진 앞에는 이희호 여사가 직접 덧신과 깨알같은 글씨로 편지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놀랍게도 마하트마 간디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갑작스럽게 암살을 당해 세상을 떠나 노벨 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20세기 비폭력에 상징인 간디는 1937 ~ 48년까지 12차례나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노벨 위원회도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전세계적으로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노벨상이 너무 유럽 편향적인 아니냐, 노르웨이가 영국이랑 가까워서 안준거 아니냐 등등

1949 간디가 사망한 다음해에 달라이 라마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는데 이는 마하트마 간디를 기념하기 위함이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노벨 위원회도 간디에게 상을 주기 위해 노력은 하였습니다. 

간디가 암살 당한 1948 1 30일이 후보자 추천 마감날인 1 31일의 하루 전입니다. 

후보자로 선정된 사망하였다면 수상할 있었지만 후보자로 선정되지 않았기에 선정하지 않았습니다. 

간디를 기념하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지만 노벨 위원회는 1948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없다고 발표하였습니다. 

1969 영국은 간디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 우표를 발행하였는데 보통 우표의 크기로 만들었습니다. 

영국의 폭력에 저항했던 인도의 독립운동가를 위해서 영국이 정도로 기념하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전에 언급하였던 올로프 팔메 스웨덴 총리도 오래살았다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아파르트헤이트 척결의 선봉장이었으며, 비핵화 철폐의 프레임을 만들었지요. 

한국의 전후 사정과 민주화에 관심이 많아 김대중이 감옥에 있을 구명활동과 구하기 힘든 약을 보내주기도 하였습니다. 






4. 노벨 평화상의 권위


노벨 평화상은 그 권위를 어떻게 쓰느냐가 매우 중요한 사항입니다. 

위원회에서도 상의 권위와 명예를 어떻게 것인지 매우 고민한 흔적이 보입니다. 


노벨 평화상으로 베트남 전쟁 당사자들에게 종전과 화해의 의미로 주기도 하였습니다.

전쟁 양 당사자들을 한 곳에 불러서 대화의 채널을 만들려고 하는 역할의 흔적이 보이는 것입니다. 


1993년에는 넬슨만델라가 평화상을 받게 되는데 혼자 받는 것이 아니라 프레드리크 클레르크 남아공 대통령과 같이 받게 됩니다. 아파르트헤이트를 척결한 공로로 말이죠.

1994년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협정인 오슬로 협정을 맺은 후에 당사자들이 수상하였습니다. 테러를 많이 했던 양국에 대해 평화상을 주는 것이 맞지 않다고 주장하는 중동 사람들은 매우 많았다고 합니다. 

2000년도에는 유일한 분단국가인 김대중 대통령에게 새천년의 평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2009년에는 버락 오바마에게 수상되었는데, 아프리카 아메리칸이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는 자체가 평화상을 받을 정도의 업적이냐 반발이 많았다고 합니다. 차라리 퇴임 직후에 받았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2015년에는 과학상 기생충 말라리아 연구에 관련된 분야에 수상하였는데 인류애에 기여했다는 이유입니다. 






5. 노벨상 수상 거부한 사람들


이런 권위 있는 누구나 받고 싶어하는 노벨상을 거절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로 1964년에 사르트르가 노벨 문학상을 거절하였습니다. 

거절한 이유도 멋있습니다. 

작가는 어떤 제도나 체제에 속박 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비록 그것이 가장 명예로운 것이라 할지라도.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_+


1958년에 닥터지바고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또한 거절하였습니다. 

상이 싫어서라기 보다는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네요. 

닥터지바고에서 혁명을 부정적으로 그렸다고 해서 소련에서는 작가 동맹에서 제명시켰습니다

수상하러 소련을 떠나면 다시는 귀국 못할 것이라 협박하였습니다

작가는 러시아에 남아서 활동하고 싶었기에 수상을 거절하였습니

그러나 스웨덴 한림원은 파스테르나크의 거절을 거절하였고, 그가 수상할 때까지 상을 보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1989년에 파스테르나크의 아들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받았습니다. 






6. 노벨상에 대한 부정적인 면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좋은면만 노벨상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스웨덴의 인구 규모에 비해 웨덴 후보자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또한 그동안의 수상이 지나치게 유럽 편향적 수상이었다는 것입니다. 

문학 작품의 경우 번역이 되기 어려운 동양의 경우 수상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노벨상의 성취 조건과 역사를 보면서 

그 동안의 수상했던 사람들의 일화들을 알아 보았습니다. 

특히, 간디가 못받은 것은 안타깝지만 노력은 한 것 같아 그나마 다행입니다. 

다음 시간에도 이어서 노벨상에 대한 포스팅을 이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안녕~




팟캐스트 '그것은 알고 싶다'를 듣고 

개인적으로 기록한 공간으로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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