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사망 사건 타임테이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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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사망 사건 타임테이블 (1)



어떻게 생각해보면 미투 무브먼트 라는 것은 인류 역사가 지속되는 내내 존재했던 피해자의 목소리가 플래폼만 바뀐 체 꾸준히 내려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달라진게 있다면 목소리를 더 내자, 당하고 앉자있지 말자, 당신 잘못이 아니다, 이렇게 용기를 주는 시민들 사이의 연대의식이 조금더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재조사가 시작되기 전에 일이 전개가 되고 묻혀간 기록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장자연 사망 사건장자연 사망 사건


2009년 3월 7일 

배우 故장자연 씨가 자택에서 자살했습니다. 친언니가 당시에 발견을 했으며, 경찰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결론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경찰은 빨리 결론을 지으려고 했었습니다. 


2009년 3월 8일

장자연 씨의 전 매니저인 유모씨가 미니홈피에 장자연씨가 죽기 전 건내 준 친필 문서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몇 배로 커집니다. 그리고 유족과 언론사 2곳의 기자 3명에게 문서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 문서의 사본을 보여줍니다. 유족들은 문서를 언론에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2009년 3월 9일

전 매니저 유모씨가 미니홈피에 공공의적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소속사 대표와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소속사 대표와의 문제까지만 언급했고, 이 정도 사건인 줄은 몰랐던 기억이 납니다. 


2009년 3월 10일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장자연 문건이 있다는 사실을 보도합니다. 그리고 유씨는 문서 일부를 공개합니다. 유족은 어떤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유모씨는 언론전을 하려는 결심을 굳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09년 3월 11일

유씨와 유가족이 만나서 다음날 원본을 주기로 약속합니다. 이 때 유씨가 경호원을 데리고 유가족들의 집에 직접 찾아갔다고 합니다. 


2009년 3월 12일

오후 6시에 유족과 유씨가 문건의 원본을 찾기 위해 봉은사에서 만납니다. 유씨는 땅에 묻은 문건을 찾아서 보여줬다고 합니다. 유족들이 문건을 달라고 했는데 유씨는 문건을 여기서 태우거나 가져가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태우기로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왜 원본을 태우려고 했는지 등 이유를 아직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 때 유족들은 타다만 조각들이 없이 모두 불 탄 것을 확인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원본과 복사본을 유족들이 보는 앞에서 소각합니다. 



2009년 3월 13일

KBS가 유씨의 사무실 앞 쓰레기 봉투 안에서 찢어져 있는 장자연 문건을 찾아냅니다. 불태웠다고 한 것이 유출이 된 것입니다. 당연히 기자들이 유씨한테 물어봤고요. 유씨는 문서를 작성하기 전 7장~8장의 초안을 작성하고 4부 정도 복사한거 같은데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초안과 복사본은 태우거나 찢어서 버렸다. KBS에서 발견한 것은 이 문건인 거 같다고 진술했습니다. 


KBS에서 공개한 문서의 내용은 기획사의 요구로 인해 술접대, 잠자리 강요까지 받았다. 또한 방 안에 가둬진 체로 손과 페트병으로 구타를 당한 적 있고, 매니저 월급 등을 책임지도록 기획사 측에서 강요받았다. 이렇게 적혀져 있었습니다. 태국에 가서 골프 접대를 해야 했다는 사실과 나중에 태국 골프 접대를 드라마 촬영 이유로 거부하자 불이익을 당했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KBS에서 보도했습니다. 문서는 2월 28일에 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자살하기 약 1주일 전입니다. 심지어 문서에는 주민번호를 적고 지장까지 찍었다고 합니다. 


사건이 일어나고 6일 동안은 연예면에서만 보도되다가 시사면으로 옮겨 붙습니다. 


경찰은 매니저 유씨를 부르고 유씨는 경찰에 진술을 한 후 갑자기 자살시도를 하고 입원합니다. 


2009년 3월 14일

KBS에서 리스트가 있다고 보도를 합니다. 유력 인사의 실명이 있다고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경찰에서는 수사 전담팀을 만들어서 수사를 시작하고요. 소속사는 연예인 이적 문제로 소송을 벌이고 있는 유씨가 자신의 입지를 위해서 장자연씨에게 문건 작성을 강요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여기에 연루된 연예인이 이미숙씨 라고 바로 대응을 했습니다. 


2009년 3월 15일

경찰에서 실명 확인 작업 중이라고 발표합니다. 


2009년 3월 16일

경찰이 갑자기 실명이 없다고 발표합니다. 그리고 통화 녹취로 기획사 대표와 갈등 관계를 확인했다고 발표합니다. 이게 경찰이 생각한 출구전략이었습니다. 


2009년 3월 17일

유가족들이 사자 명예훼손과 강요 등의 혐의로 매니저와 소속사 대표를 고소합니다. 그리고 문서 안에 있는 이름 7명을 고소합니다. 그리고 경찰은 소속사 대표 김씨의 집을 압수수색합니다. 그리고 태국 골프 여행에 동행한 PD와 경찰이 통화를 했습니다. 이 드라마 PD는 당시 여행은 접대성이 없었고, 식사나 골프 비용을 내가 냈다고 했습니다. 


2009년 3월 18일

서세원씨와 주진우씨가 매니저 유모씨의 병실을 방문합니다. 당시 서세원씨의 방문이 논란이 되자 주진우씨가 인터뷰를 주선하기 위해서 서세원씨에게 부탁했다고 해명이 되었습니다. 


2009년 3월 19일

경찰에서 리스트가 있다는 발표를 확실히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비난 여론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리스트에 유력 일간지 대표와 IT 대표가 있다는 사실을 보도하고 인터넷에서는 리스트라는 확인 안 된 명단이 돌기 시작합니다. 


2009년 3월 20일

언론에서 장자연씨 소속사 건물이 1층은 와인바, 2층은 사무실, 3층은 침실이라고 밝힙니다. 지금까지 행동이 이해가 안되는 등장인물이 2명입니다. 한 명은 유모씨. 다른 한 명은 경찰입니다. 매일매일 다른 소리를 합니다. 


2009년 3월 21일

경찰에서 리스트에 있는 인사들 실명을 확보했다고 밝힙니다. 그러고선 1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저희들은 실명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9년 3월 22일

소속사 건물을 압수수색합니다. 언론이 다 훑고 지난 후에야 압수수색을 들어갑니다. 


2009년 3월 23일

일본에 있는 소속사 대표 김씨를 인터폴에 적색 수배됩니다. 


2009년 3월 24일

경찰에서 조사중인 인원이 12명이라고 밝힙니다. 접대 장소는 소속사 대표의 옛 삼성동 사무실 건물 2층이며, 12명 중 7명은 유족에 의한 피고소인들입니다. 문건에 검용된 이름은 5명 그리고 술자리에서 고인에게 부적절한 행위를 한 1명이 추가됩니다. 


경찰은 2008년 5월 16일에 소속사 대표와 장씨가 태국으로 출국해서 6박 7일 동안 체류한 사실을 확인 합니다. 그리고 태국 골프 접대 사진을 확보합니다. 거기서 접대를 했는지 안했는지는 모르지만 문건에 있는 태국 골프 사실을 확보한 것입니다. 

그리고 경찰에서는 매니저 유씨가 장씨 자살 전에 드라마 PD와 문건에 대해 전화통화를 한 사실을 확인합니다. 장씨가 자살 전에 매니저가 드라마 PD와 함께 장씨가 쓴 유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이 문건이 유서가 아닐 확률이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로 유서는 아닙니다. 누가 유서에 주민등록번호 쓰고 지장을 찍습니까. 드라마 PD의 말로는 장씨의 문건은 자살 전부터 방송계에 소문이 나 있었다고 합니다. 매니저 유씨가 드라마PD에게 장씨가 소속사를 나오려고 하는데 현 소속사 대표 김씨가 난리를 치고 있으니 문건을 보고 김씨를 야단쳐 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2009년 3월 26일

장자연씨의 소속사에서 매니저 유씨를 명예훼손을 고소합니다.



2009년 4월 2일

경찰에서 소속사 대표 김씨의 강제 송환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4월 3일날 체포 영장이 발부되고요. 13일 일본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합니다. 그러자 김씨는 잠적합니다. 이로써 수사는 사실상 더뎌집니다. 그리고 경찰은 술자리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한 1명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2009년 6월 24일

소속사 대표 김씨가 일본에서 불법체류 혐의로 잡힙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송환됩니다. 


2009년 8월 19일

수사가 다시 급물살을 탄다는 보도가 나오고 언론이 끓어오릅니다. 그런데 8월 19일 검찰은 김씨의 강요 행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강요 행위가 인정되지 않았으니 강요 방조죄도 죄가 없게 됩니다. 강요 방조죄로 수사를 받은 리스트에 있는 모든 인물들은 혐의가 없어집니다. 그리고 검찰은 김씨와 유씨 두 명만 기소합니다. 유씨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입건이 됩니다. 그래서 실제로 강요죄로 들어간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장자연씨와 관련된 혐의는 김씨에 의한 폭행밖에 없었고요. 나머지는 김씨와 유씨의 상호간의 명예훼손 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 성범죄에 대한 것은 기소 중지 되었습니다. 





장자연씨 리스트가 화제가 크게 된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2009년 4월 6일

2009년 4월 6일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장자연 문건에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이 있다는 내용을 공개합니다. 조선일보 사장이 그런 일을 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 아니라 일이 이렇게까지 되나에 대한 놀라움이었습니다. 조선일보에서는 즉각 반박하며 명예훼손으로 이종걸 의원을 고소합니다. 


2009년 4월 13일

경찰청장이 국회에서 조선일보 고위간부가 리스트에 있다고 답변합니다. 조선일보 고위임원, 조선일보 고위임원 아들, 인터넷언론사 대표가 수사 대상이라고 밝혔습니다. 


2009년 5월 16일

조선일보에서 허위보도로 명예훼손을 했다는 이유로 KBS, MBS의 보도본부장과 신경민 MBC 앵커, KBS 기자 2명에게 35억 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겁니다. 그리고 미디어오늘에도 13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겁니다. 이 소송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2011년 11월에 패소합니다. 왜냐하면 조선일보를 정확히 지칭하지도 않았고, 세간의 정황이 이랬기 때문에 그 정황을 보도한 것 뿐이다 입니다. 조선일보가 항소를 했다가 또 항소를 취하했습니다. 


조선일보 사장 방상훈 씨와 차남 방정호 씨 모두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장자연 씨 돌아가시고 2달 뒤의 일입니다. 그리고 사건은 흐지부지 됩니다. 기소는 되고 재판만 남은 건데 그 전에 중요 인물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2011년 3월 6일

SBS에서 왕진진의 편지가 공개되면서 사건이 재점화됩니다. 왕진진은 본명이 아니라 닉네임입니다. 


2011년 3월 9일

배우 문성근씨가 정오부터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합니다. 같은 날 오후 3시. 조선일보에서 "소속사 대표 김모씨 평소 스포츠조선 전 사장을 조선일보 사장으로 부른 게 오해불러" 라는 기사가 나옵니다. 이 기사를 통해서 조선일보가 스포츠조선 전 사장에게 죄를 다 뒤집어 씌우려는 듯 보인다. 



다음 편에서 이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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